- 빵 만들기 전 산에 오르는 사람들, 왜?
충북 제천 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 덕산면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시장 쪽으로 100m나 갔을까? 시골에서는 보기 어려운 카페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바로 '누리마을 빵카페'. 덕산마을을 둘러싼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어딘가 이국적 분위기가 살짝 풍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5평 남짓한 실내를 꽉 채우고 있는 건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 아기자기한 커튼이 처져있고 천정에는 조명등이 일렬로 늘어서 실내를 비추고 있어 마치 작은 공연장에 들어온 느낌이다. "어서 오세요." 조금 어색한 발음이지만 반색하며 손님을 맞은 사람은 카페 매니저 프라 파이(36)씨. 태국 출신인 그녀는 10년 전 결혼을 하며 한국에 왔다. 해맑게 시종 웃어대는 그녀는 카페 일이 항상 즐겁다고 말했다. 개업 3년째인 카페에는 그녀 말고도 카페 대표인 이원범(21)씨와 직원 둘이 일하는데, 마침 농사일을 하다 잠시 쉬러 온 손님도 둘 있었다.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 주고 자신감 키워주는 '빵카페' '누리마을 빵카페'를 이런 시골에 개업할 아이디어를 낸 이는 마을 주민이자 간디교육연구소 직원인 장춘봉(37)씨다. 그에게 빵카페 개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천 간디학교에 계신 한석주 선생님이 한국-베트남 평화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이주여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이주여성들의 각기 다른 문화를 인정하기보단 그들을 한국 문화로 동화시키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한 선생님은 이주여성들을 한 문화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그들을 돕기 위해 우선 누리마을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센터 설립 이유를 현실화 한 것이 바로 빵카페였습니다." 빵카페는 이주여성들에게 일자리와 함께 삶의 주체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빵과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운 간디학교 졸업생들에게 일자리도 주었다. 카페는 졸업생들이 이주여성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면서 운영된다. 이주여성들은 대개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고 생김새가 달라 일자리를 얻기 쉽지 않다. 파이씨는 혼자 시내에 나가는 것조차 시부모님과 신랑이 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빵카페는 달랐다. 마을 안에 있는데다 직원들 모두 파이씨 가족과 아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경제적 자립과 함께 한국 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제 월급은 제가 관리해요. 신랑이 돈 어디 갔냐고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어요. 카페에서 제가 번 돈으로 필요한 물건 사고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고 해요. 다른 마을 사람들이 덕산 이주여성들은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산다고 이야기해요." 마을 유기농 농산물 재료로 사용... '가격 상승'으로 위기 겪기도 빵카페에도 위기는 있었다. 지난해 구제역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버터와 우유 값이 치솟았다. 비싼 유기농 재료들을 사용했으니 빵 값을 올리지 않고서는 카페를 유지할 수 없었다. 가격을 올리자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매출이 줄어 직원중에서 결국 파이씨와 간디학교 졸업생 이원범 대표만 남았다. "그 때 정말 최악이었어요. 보다 못한 시어머니와 신랑이 '이제 가게 그만 나가고 같이 농사나 짓자'고 했어요. 하지만 이 일이 좋고 포기하기 싫어 그럴 수 없었죠." 두 사람은 고군분투했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재료, 바로 구운 빵'을 내세워 주민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진심은 통했고 이제 네 명이 일하는 어엿한 일터가 됐다. 덕산 마을에서 철물점을 하는 강승구(48)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카페에 들른다. "다른 마을에는 이런 카페가 없는데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마을 유기농 농산물 원료들 갖다 쓰는데 우리가 이 빵집을 지켜야지요. 값이 올라도 마을 소득과 건강을 생각해서 계속 여기에 옵니다. 빵이 맛있고 또 먹고 나서 뒤끝이 없어요. 좋은 재료들을 쓰니까. 자식들은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제천 시내에 가서 달착지근한 프랜차이즈 빵을 사먹곤 하는데 사실 그런 빵은 몸에 안 좋거든요. 자식들한테 계속 누리마을 빵카페 빵을 권하곤 하는데 잘못 길들여진 애들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네요." 산과 들에서 딴 오디·매실이 빵 만드는 재료 카페에서는 빵을 만들 때 되도록 이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다. 가끔 날을 잡아 숲이나 들판으로 나가서 오디, 개복숭아, 오미자, 매실을 따오기도 한다. 카페 사정을 훤히 아는 주민들은 자기 밭이나 어느 골짜기에 이런 야생과일들이 익었다며 따 가라고 알려준다. 직원들은 이런 열매로 오미자효소나 매실효소 같은 음료를 만들어 내놓는데 특히 외지 손님들한테 인기가 있다. 빵을 만들 때 빼놓을 수 없는 달걀도 이웃 수산 마을에서 유정란으로 공급받는다. "유정란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요. 작을 때도 있고 클 때도 있고 그래서 무게도 다르고. 알도 잘 안 나올 때가 많죠. 닭들이 하도 돌아다녀서 알 찾기도 어렵대요. 무엇보다도 너무 비싸서… (한숨)." 이원범 대표는 일반 달걀보다 유정란이 비싸고 구하기 어렵지만 손님들 건강을 생각하면 차마 무정란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무정란은 풀어놓고 키우는 닭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닭들이 작은 칸 속에 갇혀 계속 전깃불을 쬐면서 인공적으로 낳은 알이죠. 항생제를 듬뿍 먹은 닭한테서 나온 알을 재료로 쓸 수 있나요? 몸에 좋은 재료만 쓰겠다고 손님들과 약속했는데." 아직 이루지 못한 두 가지 꿈... "카페가 마을 문화공간 됐으면" 빵카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직접 겪고 있다.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주여성들에게 경제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삶의 주체로 내세우고, 지역에서 난 유기농 농산물을 이용해 농촌경제를 살리려 노력한다. 덕산이란 작은 마을에서 카페가 하는 역할은 그대로도 커 보이지만 장춘봉씨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 두 개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빵카페에서 덕산 지역 농산물을 외지인들에게 파는 것과 덕산주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덕산에서는 수수쌀, 붉은팥 같은 곡식에서 헛개열매와 약도라지 같은 약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물이 수확된다. "작물을 외부에 팔려면 여러 중개상인들을 거쳐야 하니 정작 농민들이 받는 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외지에서 오신 빵카페 손님들에게 우리가 직접 판매한다면 덕산 농민들에게 더 많은 돈이 돌아갈 텐데…" 빵카페의 또 다른 꿈은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덕산마을에서 스스로 문화공간이 되는 것이다. 카페 내부를 소규모 공연장처럼 꾸몄던 것도 그 때문이다. 별다른 놀이공간이 없는 덕산초등학생이나 간디학교 학생들이 와서 웃고 떠들고 가긴 하지만 문화공간으로서 빵카페는 아직 미완성이다. "지금은 빵카페를 공연장 용도로 1년에 딱 한 번 써요. 송년회 때. 마을 주민들, 학생들, 간디학교 학부모 모두 모여서 기타 치고 노래해요. 한 번이라도 쓰는 게 어디에요? 그래도 앞으로 더 많이 이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카페 직원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며 겸손하게 말하지만, 산골마을 사람들의 꿈은 하나 둘 현실로 바뀌고 있었다.
- 페이스북 창업자 주커버그 '깜짝 결혼식'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28)가 '품절남'이 됐다. 주커버그는 20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의 자택에서 9년간 교제해온 연인 1살 연하의 프리실라 챈과 결혼식을 올린 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결혼 사진을 공개했다. 한편 주커버그는 결혼식 전날 기업공개(IPO)를 통해 나스닥에 페이스북 상장을 마쳤다. 중국계 미국인으로 9년 전 하버드에서 주커버그와 처음 만난 챈은 최근 캘리포니아대(UC) 의대를 졸업했다. 결혼식은 100명 정도의 지인이 참석해 조촐하게 치러졌고 당초 하객들은 챈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로 알고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한 하객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shocked)"고 전했다. 페이스북이 상장된 나스닥 개장 첫날 행사조차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후드티를 입고 나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주커버그도 결혼식 만큼은 단정한 검정색 정장과 넥타이를 하고 나왔다. 페이스북 대변인은 주커버그가 '매우 단순한(very simple)' 루비 결혼반지를 직접 디자인해 신부 챈에게 선물했다고 밝혔다. 2004년 하버드 재학 시절 페이스북을 만들어 전 세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열풍을 일으킨 주커버그는 2010년 26살의 나이로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뽑혔고 약 200억 달러(22조 원)에 이르는 페이스북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
- 김한길, 울산 지역대의원 투표에서 1위
[기사 보강 : 20일 오후 6시 35분] 이해찬 후보의 우세가 예상됐던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울산 지역대의원 투표에서 김한길 후보가 1위를 해 경선 시작부터 이변을 만들어냈다. 20일 오후 울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최고위원 울산시당 선출대회에서 김한길 후보가 103표를 얻어 첫 지역경선에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61표를 받은 추미애 후보, 3위는 52표를 받은 우상호 후보가 차지했다. 울산지역은 친노 성향이 강해 이해찬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이 후보는 48표를 얻어 4위에 그쳤다. 강기정 후보가 40표로 5위, 조정식 후보나 38표로 6위, 이종걸 후보가 33표로 7위, 문용식 후보가 15표로 8위를 기록했다. 이날 투표에는 지역대의원 221명 중 195명이 참석해 88.2%의 투표율을 보였고, 지역대의원 221명 중 195명이 참석, 1인 1표 2연기명 방식으로(유권자 1명이 후보 2명 선택)실시됐다. (*자세한 기사 이어집니다.)
- 10억짜리 비새는 거북선, '이순신 장군 울겠다'
사천시가 10억 원(국비2억, 도비2억, 시비6억)을 투자해 삼천포대교 공원 주차장 옆에 설치한 거북선 원형모형이 비가 새고 안전문제가 불거지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할 운명에 처했다. 거북선 원형모형은 지난 1월 준공 이후 수개월간 문을 못 열고 있다. 이를 두고 사업초기부터 문제를 지적했던 시의회에서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며, 행정사무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2009년 사천시는 역사체험이 가능한 거북선 원형 모형을 제작해서 국난 극복의 교육장소를 제공하고, 역사적 중요성을 각인시킴으로써 해양관광도시 사천 이미지를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천시의 장담과 달리, 준공 이후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월 준공된 거북선 원형모형은 목재가 갈라지고 틀어지면서 빗물이 스며드는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10억 원을 투자한 목선인 거북선원형모형이 썩을 위기에 처한 것. 시는 준공 이후 갈라진 나무틈새를 메우는 등 하자 보수 작업을 진행했으나, 선체 내외부에 곳곳에는 흰 곰팡이가 발견되는 등 곳곳이 썩기 직전 상태까지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흰 곰팡이가 검게 변하면 목재는 본격적으로 썩어 들어간다고 전했다. 거북선 모형 외벽에는 아직 송진이 흘러나오고 있다. 전통선박 전문가들은 충분히 건조하지 않은 나무를 사용한 것을 갈라짐과 비틀어짐, 누수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갈라진 목재 틈으로 스며든 빗물이 한때 거북선 1층에 고이는 사태도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북선 2층과 연결되는 나무 계단 역시 곳곳이 갈라지고 있다. 담당부서인 사천시 문화관광과 담당자 역시 거북선 누수 문제와 하자보수 사실에 대해 사실을 인정했다. 시 관계자는 "전임자 역시 만드는 것보다 만들고 나서가 문제라고 하던데, 목재를 충분히 건조해야 하나 시간이 촉박했다. 그나마 공기를 6개월 연장하는 등 노력했다"고 말했다. 2011년 행정사무감사에서 시의회에 보고한 당초 준공 시기는 2011년 4월이었다. 1월 준공 후 5개월간 문을 못 연 이유에 대해서는 "하자보수작업과 대포 등 내부시설물 도난방지를 위한 잠금장치 등을 보강하는데 시일이 소요됐다"고 해명했다. 시 관계자는 "5월말 일반인들에게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목재 갈라짐 문제 외에도 체험교육 장소 활용에도 애로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시가 설치한 거북선 원형은 길이 26.27m, 높이 4.2m, 폭이 7.06m로 되어 있고, 3층 구조로 강철 H빔과 미국산 소나무, 스기목이 사용됐다. 3층 구조로 설치하면서 각 층의 높이가 1.5m 남짓에 불과해 관람과 이동에 제약이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린이를 제외하고, 청소년과 성인들은 낮은 천장 높이 때문에 머리 부상 등 위험 등이 따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시는 거북선 원형모형 곳곳에 머리조심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내부가 좁다보니 내부 인테리어나 체험시설물 설치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형과 대포를 몇 개 설치해 놓은 것이 전부인 상황. 좁은 공간 탓에 관람객들의 동선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사천시가 경남도에 내부 공간을 터는 것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해 놓았으나, 원형복원의 취지와 달라 개조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동선이 확보되지 않아 관람객이 내부에서 엉키면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이 같은 문제 등은 거북선 원형모형 제작 설치사업 초기부터 지적돼왔다. 2009년 2월 12일 사천시의회 총무산업건설위원회에서 사업계획을 보고 받은 시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당시 이정희 의원은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할 배가 산으로 간다. 언덕에 올려놓으면 관광객이 유치될 것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가능한지 참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2010년 10월 사천시의회 현장방문에서도 시의원들은 "대한민국 어딜 가나 거북선이 애물단지 아닌 곳 없는데, 또 거북선 타령"이라며 시의 계획을 질타한 바 있다. 삼천포대교 일원 현장방문에서 한대식 의원 등은 "성급하게 추진한 거북선 모형이 흉물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며 "10억의 예산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일만한 모형이 되겠냐"고 지적했다.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회는 2012년 행정사무감사에서 거북선원형모형 제작사업을 짚겠다며, 관련 자료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 "도시 때 벗으면 농촌 생활도 재밌답니다"
구수한 된장국으로 숙취를 해소하니 이번엔 다른 생리가 엄습합니다. 변기에 걸터앉아 신문 하나 있으면 될 터인데, 여기선 그게 그렇게 안 됩니다. 쪼그려 앉아 대·소변 따로 처리해야 하는 '생태화장실'이니까요. 한쪽 귀퉁이에 읽을거리가 쌓여있지만 발이 저려 책을 붙잡고 있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쪼그린 채 몇 번을 일어났다 앉고 이리저리 비틀기를 반복했을까. 간신히 일을 마쳤습니다. 책은 들어보지도 못 했고요. 왕겨를 덮으면 끝입니다. '해우소'를 나서는데 저절로 한숨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휴우~" 쥔장이 마당에서 뭔가를 하는 모양인데, 노랫소리가 우렁찹니다. '선구자'부터 흘러간 유행가, 그리고 오래전 불렸던 민중가요까지 경계가 없습니다. 잘 들어보니 혼자 노래를 그렇게 하는 건 아니더군요. 툇마루에 카세트라디오를 틀어놨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담은 저장매체(USB)를 연결해 켜놓고 한 구절씩 따라 부른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귀농·귀촌한 어떤 분으로부터 막상 현지에 가 정착하고 보니 하루가 좀 길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한 말을 들었는데, 혹시 쥔장도 무료함을 달래려고 그리하나 싶어 '밝은마을' 운영자인 김혜정 여행생협 추진위원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하네요. "지루함을 느꼈다는 분은 아직 도시 때를 덜 벗어 그런 것이지요. 이웃·친구·동료들과 늘 경쟁해 이겨야 '제몫'을 늘릴 수 있다고 알고 그리해온 습성이지요. 농촌·산촌에 와 보면 같이 경쟁할 상대가 안 보이니 허전해서 그런 것이고요. 그 때를 넘기면 농촌 삶이 달라져요.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거든요." 쪼그려앉아 부르르 떨다 일을 마치니... 마당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지는 쥔장을 보고 김일섭 여행생협 상임대표가 "어머니 상태는 어떤 거냐? 우리들이 방문했다는 얘기는 했느냐"고 묻자, 전희식씨가 피식 웃으며 "어머니께 이웃 마을에 사는 일꾼이라고 말했으며 그리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곤 덧붙입니다. "일거리가 있어 이웃을 품삯을 주고 불렀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데 어서 돌려보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니, 일 할 거'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에이, 바보 같은 놈아, 일은 안 하고 품삯만 받으러 온 사람들이야'라고 하더이다." 그러면서 쥔장은 방문자를 본격적으로 부리기 시작합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수도시설이 있고 이걸 연결해 치매 어머니가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안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마당 수도시설을 개량해야 한다고 합니다. 수도꼭지가 얼지 않도록 플라스틱 통에 싸 흙속에 파묻어놨는데, 그 통을 교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김 상임대표와 기자는 "어머니가 일시키지 말고 돌려보내라고 했는데, 아들이 말을 안 듣고 일꾼을 부려먹는다"고 투덜(?)대며 삽을 들었습니다. 플라스틱 통을 파내고 다른 걸로 대체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는데, 문제는 원통 안쪽 수도꼭지입니다. 해체했다가 다시 연결하는 거라 물이 샐 수 있기 때문. 장정 셋이 1시간여 낑낑거리며 일을 간신히 마쳤습니다. 마당이 깨끗해졌다며 쥔장이 '잘됐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일행은 안도했습니다. 계곡 위쪽 주민 한 분이 자신과 일행을 초대했다며 가자고 트럭 짐칸에 올라타라고 합니다. 나물캐던 일행을 불러 트럭 짐칸에 타고 5분여 계곡 깊숙한 곳으로 올랐을까요. 그림 같은 전원농가가 나타납니다. 달밤에 이은 아침 산책길에 봤던 그 아름다운 집.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주위를 살피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장년의 남자 한 분이 모자를 벗으며 반갑게 일행을 맞이합니다. 전원주택 남편 쥔장입니다. 집이 너무 예뻐 화단을 둘러보며 돌계단을 오르는데 이번엔 여편 쥔장이 현관문을 열고나오며 '어서 오라'고 반깁니다. 폭이 그리 넓지 않아 아담하게 흘러내린 남덕유 서남능선 계곡 중턱. 왼쪽 개울로 시냇물이 흐르고 계곡 한 가운데 밭을 일궈 집을 짓고 주변을 정원처럼 가꿔 놓았습니다. 쥔장 성품만큼이나 예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앞마당엔 꽃잔디가 쫙 펼쳐져있고, 화단(뜰)엔 제비꽃·할미꽃 등 봄꽃들이 매혹적입니다. "바보야, 일 안하고 삯만 챙기려해" 그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장독대. 올망졸망 50여개의 크고 작은 장독들에 무엇이 담긴 줄 일행은 알고 있습니다. 전 대표가 귀띔을 해줬거든요. 정년을 마칠 나이의 부부. 도시에 살다 2년 전 내려온 귀촌자. 뭘 할까 고민하다 음식솜씨가 뛰어난 부인 정삼례(64)씨 덕에 된장 담그는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정씨가 데려간 곳도 장독대였습니다. 뚜껑을 열더니 1년 숙성된 된장이라며 한 움큼 퍼내 맛을 보라고 권합니다. 기자야 된장 맛을 제대로 알 리가 없고. 그림 같은 산촌마을에서 마음씨·솜씨 좋은 이의 된장을 맛보는데 어찌 딴소리 나오리까? 정씨 부부는 농촌진흥청 지원을 받아 된장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완주군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음식(푸드)축제'에서 발효한 된장(생강)을 활용한 돼지고기 삼겹살 찜·구이로 최고상을 받았고. 상품개발 가치를 인정한 자치단체가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명덕리 계곡이 백두대간보호법 규제를 받아 제조시설 설립·허가가 안 나오기 때문. 마을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 그녀의 음식솜씨를 활용할 방안을 고민 중이랍니다. 전 대표에 따르면, 백두대간 친환경 마을조성 용으로 정부(아님 자치단체)로부터 수십억 원이 지원돼 쓰고 남은 게 있는데, 시설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인근 마을에 제조시설을 짓는 데 사용하려고 논의 중이라네요. 그녀는 머지않아 된장 사업을 벌일 결심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체력(능력)으로 8백kg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고. 된장 맛은 장소·바람·햇볕이 좌우하는데, 그녀는 여기와 그 최적지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효모 고초균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술도 더 연마중이고요. "된장의 오덕을 보통 다섯 가지로 들잖아요. 오래 둬도 상하지 않아 항심(恒心). 매운맛을 부드럽게 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화심(和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하는 불심(佛心). 어떤 것과 섞여도 제 맛을 유지하는 단심(丹心). 여기 오기 전, 그러니까 3년 전부터 전 새벽 2시 이전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된장의 달인'의 '화심 국수' 먹고선 명덕리에 들어온 건 1년이 조금 넘었고, 그 전엔 영광군에 있는 연안 김씨 종택에서 1년여를 살았다고 했습니다. 군청이 사회적기업으로 문화재(종택 등) 관리자를 선발하고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해 귀촌을 준비한 것입니다. 지금 그는 '기능성 된장'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마·표고·고추씨 등을 활용(첨가)한 된장. 그 맛이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어찌 그리 좋은 음식 솜씨를 가졌냐고 물으니, 어머니로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성균관 부관장을 하셨어요. 많은 유림들이 집에 찾아오다 보니, 어머니가 늘 손님 접대를 해야 했죠. 그래선지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남달랐죠. 전 자연스럽게 터득했고요." 6명은 정씨의 집에서 호사를 누렸다. 향기 은은한 국화차에 자신이 직접 담근 간장을 양념장으로 쓴 국수(소면)를 점심으로 맛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 집 된장 맛 속에는 국화향도 한몫 하고 있다네요. 집 앞 화단과 밭에 온통 국화가 자라고 있어 궁금했는데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전 대표의 기행 추가. 노랗게 말린 국화꽃으로 만든 차를 한 잔 마시더니 갑자기 노래를 하겠는 겁니다. 생전 처음 들은 노래를 하더군요. 우렁찬 목소리로. 한 소절을 하더니 그만두고는 자작곡이라고 했습니다. 일행은 적잖게 놀라는 기색이었고요. 국화차를 마주하니 소리꾼 장사익이 된 줄 알았을까요? 솔직히 음정은 좀 그랬습니다. 정씨 부부의 정이 담긴 환대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전 대표가 어머니 때문에 먼저 내려간답니다. 일행은 국화 순 따는 노동을 30여 분 했을까요? 맛 좋은 점심 '은혜 갚느라'. 이어 정씨 부부의 환송을 받으며 나머지도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전 대표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픈 어머니가 '똥꽃'을 피웠다고 했습니다. 그는 외지 사는 친구집에 상(喪)이 있어 어머니를 돌볼 시설에 모셔드리고 1박2일 출타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방문단도 귀갓길을 서두르기로 했습니다. 연휴라 고속도로 정체 걱정이 컸거든요. 짐을 챙겨 차에 옮겨놓고 기다리는 데 쥔장이 비닐봉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옵니다. 시래기에 호박말랭이 등 마른나물 거리를 건네며 나눠가지랍니다. '생명의 조화' 굳센 기상으로 뻗쳐 백두대간, 남덕유, 명덕리, 전희식 대표의 '기'를 잔뜩 나눠 챙긴 일행은 다시 여정에 올랐습니다. 차에 오르기 전 다시 한 번 남덕유를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포스 장난 아닌' 전 대표가 여기 남덕유 아래 자리 잡고 사는 이유가 뭔지를 고민했고요. 청년시절 두어 번 남·북덕유에 오른 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은 게 없습니다. 동북으로 영남에게, 그리고 서남으로 호남에게 '넉넉한 덕'을 나눠주는 덕유(德裕). 그 '덕유'가 주봉인 향적봉(북덕유)이라면, 여기 남덕유는 좀 다릅니다. 굳센 기상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남덕유의 서봉(동봉이 남덕유 정상) 아래 육십령고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덕리. 거기엔 만물이 어우러져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로움이 생명으로 움트고 있었습니다. 전 대표의 그 '기'는 그러니까 '조화로운 생명'이었고, 그 조화가 '굳센 기상'으로 발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재시인 김민부가 쓴 시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라는 그의 시에 장일남이 곡을 붙였던 명곡 '기다리는 마음'을 쓴 바로 그 시인입니다. 서른한 살에 요절했는데, 그가 고교 1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출품해 당선된 '석류'라는 시입니다. "불타오르는 정열에/ 앵도라진 입술로/ 남 몰래 숨겨온/ 말 못 할 그리움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나를 보라 하더라."
- 토요일엔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로 가자
"뚝섬 아름다운나눔장터"는 서울시와 함께하는 상설 벼룩시장이다. 헌물건의 재사용과 경제원리를 익히며 스스로 나눔을 실천하는 "가족단위 참여의 장"이며 판매수익금의 10%부터 전액 기부할 수 있으며 기부금은 전액 소외어린이들의 교육복지지원에 사용된다. 판매참가신청은 추첨제로 실시되는데 현장에서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는 불편없이 100% 인터넷 사전접수 후 추첨을 통해 장터에 참가할 수 있다. 참가신청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단위의 구성원이 가장 많고 경제활동을 경험 하기위한 어린이나 청소년들도 다수 있다. 한 어린이 판매원은 평소에 즐겨 모았던 카드를 들고 나와 어린이들을 주 고객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 한묶음에 500원 밖에 하지않아서인지 엄마손을 잡고 구경을 하던 어린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거의 다 판매를 했다며 필자에게 판매한 돈봉투를 보여주기도 했다.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에 V사인을 보내준 청소년들, 한 교회에서 참가한 부스에 경제활동을 체험해 보기 위해 봉사활동을 자처해서 나왔다고 한다. 평소 아끼던 액세서리, 신발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신발은 천원, 액세서리는 100원, 가격이라 할 수 없을 정도지만 열심히 판매에 임한 결과 거의 다 판매를 하였다고 한다. 자녀들이 입었던 헌 옷가지를 들고 나온 40대 주부님, 그 종류는 몇가지 안되지만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보니 입을 수 없게된 물건중에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되는 물건만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어 가격에 상관하지 않고 판매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시민의 참여속에 아름다운나눔장터가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다. 헌 물건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습관과 돈이 될 수 있다는 경제관념을 배울 수도 있고, 판매방법을 조금이나마 체험하여 나중에 혹시 장사를 하게 된다면 커다란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육상에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어린이나 청소년, 가족들이 합동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 가족 화합의 장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하나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행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헌 물건도 소중하게 여기고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아름다운 인간사회를 만들어 가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부디 이런 사업이전국으로 확대되어 나라의 경제의 한 축이 되었으면 한다.
- [주장] 오바마를 통해 본 한국 정치의 신념
"동성 커플이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밝히고 확인하는 것이 내게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현지시각으로 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 ABC > 방송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하며 동성 결혼을 지지했다. 이로써 오바마는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한 첫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것을 11월 미국 대선에서 어차피 보수층에게 표를 얻지 못할 오바마가 확실한 자기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정치적 꼼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단지 대선을 위한 술수라고 보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인권에 대한 정치적 '신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번 발언은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인권을 중요시했던 오바마의 신념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는 임기 전 선거 유세 때부터 동성 결혼자의 권리를 옹호했다. 그가 개신교 신자임에도 말이다. 동성 결혼자 권리 옹호에서 발전된 동성 결혼 합법화 지지 역시 종교를 넘어서 한 나라를 책임지는 정치인으로서의 신념에서 오는 자기 발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를 두고 정치적 꼼수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이다. 물론, 시기상 그렇게 비추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1월 대선 승리를 위해 오바마가 반드시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미 남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하다. 그러니 이번 일을 대선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해석하기보다는 오바마의 정치적 신념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면서, 미국과 마찬가지로 올해 대선을 치르는 현재 한국 정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는 오바마가 보여주는 이런 신념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일명 '말 바꾸기' 식 정치가 있다. 처음 보여줬던 신념과 발언, 행동들은 어디로 갔는지 정치인들은 상황에 맞게 말 바꾸기에 급급하다. 신념 없는 이런 정치 행태는 국민에게 정치 불신과 무관심을 낳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런 불신과 무관심은 민주정치의 핵심인 투표율을 저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신념 없는 정치인 탓에,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정치인 그들만을 위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신념을 지닌 사람은 이익만 좇는 10만 명의 힘에 맞먹는다." 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자기 혹은 자기 주변의 이익만 좇았다. 이제 신념을 지닌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물론 신념을 내세운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념이 있다는 말은 적어도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사안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신념 없이 말 바꾸기에 여념이 없고, 상대방의 발언을 정치적 꼼수라며 깎아내리기 바쁜 그들에게 국민이 관심을 둘 리 만무하다. 지금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술수를 쓰고 있는지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신념을 가지고 지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 [종합]10kg 감량한 정준하 "유재석, 내 결혼 대신 박지성과..."
개그맨 정준하(42)가 결혼을 앞두고 다이어트까지 감행했다. 정준하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준하는 이 자리에서 노총각 딱지를 떼고 결혼에 골인하는 소감을 밝혔다. 정준하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10kg 정도 뺐다"고 말했다. 턱시도를 입고 쑥스러운듯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 정준하는 "2주 전에 피팅했는데 살 좀 빠진 것 같지 않느냐"면서 "좀 더 갸름한 모습을 보이려고 어제 오후 8시부터 물까지 끊었다"고 전했다. 정준하는 4년 동안 교제한 10살 연하의 재일교포 예비신부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정준하의 피앙세는 '니모'라는 애칭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정준하는 "속도위반 결혼이 아니다"면서 "나이도 있기 때문에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좋겠다. 지금 (아내가 임신한) 정형돈이 가장 부럽다"고 밝혔다. 2세 계획을 설명하던 정준하는 갑자기 기침을 해 "여기 최루가스 있나봐요"라고 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정준하의 결혼식 주례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인연을 맺은 배우 이순재가 맡으며 이휘재가 사회를 본다. 유재석과 하하는 박지성과 함께하는 <런닝맨> 촬영 때문에 오지 못하며 박명수는 <나는 가수다> 생방송 때문에, 노홍철 또한 방송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 1부 축가는 신승훈이 부르며 2부 축가는 웅산과 바다, 스윗소로우가 맡는다. '연예계 마당발'로 소문난 정준하인만큼 참석 예정인 하객의 면모도 화려하다. 개그맨, 방송인뿐만 아니라 조인성과 소지섭, 장근석, 이동욱 등 한류스타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이날 결혼식이 열리는 신라호텔에는 일찌감치 일본인 관광객이 모이기도 했다. 정준하는 방송 스케줄 때문에 아직 신혼여행 계획을 잡지 못했다. 정준하는 "<무한도전> 녹화가 언제 재개될지 몰라서 시간을 보고 잡으려고 한다"면서 "신부가 하와이를 좋아하는데 그곳으로 갈까 생각 중이다"고 덧붙였다. 신접살림은 반포동 서래마을에 차린다. 다음은 취재진과 정준하의 일문일답이다 - 결혼을 앞둔 소감은? "떨리고 긴장된다. 웨딩플래너 없이 혼자 준비하느라 힘들었다. 그나마 스케줄이 많지 않아서 가구도 보러 다니고, 집도 보러 다녔다. 문화적으로 차이가 좀 있는 친구라 잘 몰라서 내가 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빨리 결혼식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 턱시도 입은 모습을 보고 신부가 뭐라고 하던가? "핸섬하다고." -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의 모습은 어떻던가? "깜짝 놀랐다. 너무 예뻐서 '오!' 소리 질렀다. 웨딩드레스 같이 보러 다녔는데 입고 나올 때마다 정말 예쁘더라." - 프러포즈는 어떻게 했나? "프러포즈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달라. 신부될 사람이 특출나게 예쁘다기 보다는 일반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대중에게 알려지면 불편할 것 같아서 공개 못하게 됐다. 양해해달라. 정준하의 신부가 어떤 사람일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데. 진짜 니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 니모 만났을 때도 '니모 같은 생선 닮았다'고 해서 많이 웃었다. 진짜 니모 같이 생겼다. 프러포즈는 식장 안에서 오늘 틀 것이다. 여자친구 집이 있는 (일본) 오사카에서 찍은 것도 있고. 진짜 슈렉과도 찍었다. 오중석 작가님의 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 다시 한 번 하겠다'며 웨딩사진 찍는 척하면서 스윗소로우가 도와줬다. 2층에서 커튼에 가려져 있다가 스윗소로우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원형 계단을 내려가서 무릎꿇고 장미를 내밀며 '내 사랑을 받아달라'고 했다. 2층에 있던 샹들리에에 반지를 숨겨 놨었는데 반지를 꺼내 끼워줬다. 감동하고 울 줄 알았는데 많이 웃더라. - 반지 자랑 좀 해 달라. "신부가 욕심이 별로 없다. 반지 싼 것 했다. 지인이 싸게 해줬다. 손에 살이 많아서 반지가 잘 안 보인다." - <무한도전> 멤버들은 뭐라고 하던가? "가장 먼저 기쁜 소식 알렸고, 축하도 많이 해줬다. 대선배인 박명수부터 유재석, 정형돈까지 덕담부터 안좋은 이야기까지 다 해줬다. '지금 많이 힘들지? 이제 시작이야' 그런 얘기 해줬다." - 현영 결혼식에서 부케도 받았는데? "결혼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아직 얘기 안하고 <무한도전> 재개하면 말하려고 입을 닫고 있었는데 어차피 결혼을 할 거라 당당하게 받았다. 무엇보다 현영이 살이 많이 쪘더라.(기자 주-현영은 임신 중이다) 2시쯤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과 살이 많이 쪘더라. 가장 먼저 축의금을 줬다. 현영 결혼식에 내가 축의금을 깜빡했는데 다시 가져와서 줬다." -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 장모님이 많이 반대했다고 하던데? "많이 알려진 것처럼 장모님이 반대했다기 보다는. 초반에는 조금 싫으셨다고 하더라. 지금은 날 그냥 아들처럼 생각한다. 발음은 좀 그렇지만 '아들~' 이렇게 부르신다. 많이 기대신다. 우리 어머니도 질투 많이 하신다. 장모님밖에 안계셔서 언니와 형부에게. 따님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데. 오사카까지 1시간밖에 안걸리니까. 이제 혼자 사셔야 하는데 자주 찾아뵙겠다. 한국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살면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장모님 마음을 돌린 비법은? " 싫어하셨던 이유 중 하나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당황하신 부분 많았다고 하더라. 어머니 뵈러 가는데 청바지 입고. 옷매무새 같은 것. 첫인상이 별로 안좋아서. 점점 맞춰가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이제는 어머니 마음이 많이 돌아온 것 같다." - 2세 계획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속도위반은 아니다. 양가에서 그런 것을 너무 싫어하신다. 자녀계획을 아직 세우지는 못했는데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좋겠다. 사실 정형돈이 가장 부럽다.(기자 주-정형돈의 아내 한유라씨는 최근 쌍둥이를 임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형돈이 사실 진짜 웃긴다. 정형돈이 '쌍둥이 임신했다.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다음날 바로 기사가 났더라." - 결혼식은? " 솔직히 말해서 기사 봤는데. 파업 때문에 많은 분들이 (<무한도전>을) 궁금해하셔서. 박명수는 <나는 가수다> 생방 때문에 못오고. 노홍철은 또 다른 방송이 있고. 하하와 유재석은 <런닝맨>. 박지성씨와 축구하는 게 기대되겠죠." - 축가는 누가 부르나? "신승훈 형님이 부른다. 1부는 길면 안되니까. 2부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재즈가수 웅산과 가수 바다가 부른다. 바다는 '꼭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서 드레스까지 협찬받았더라. 스윗소로우도 부른다. 경건한 결혼식을 원해서 나는 안부른다." - 축의금은 많이 들어왔나? "야구 시즌이라 선수들이 많이 못온다. 청첩장을 줬는데 많은 분들이 연락했고, 축의금도 보내줬다. 이승엽, 진갑용 등 많은 분들에게 청첩장을 드렸다. 스포츠 선수들은 모태범과 이상화 등이 올 것이다. 연예인 야구팀 소속인 김환 SBS 아나운서도 온다." - 결혼 후 '이것' 하나만큼은 지키겠다 하는 것 있는지? "그동안 감정 콘트롤을 못할 때가 많았는데 신부될 사람을 만나고 나서 마음의 평온함을 찾았다. 예전보다 평화롭고 온순해졌다. 그런 모습 많이 보여드리겠다. 전 국민이 '장가가기 운동'까지 하면서 응원해줘서 잘 살길 바라는 분들 실망시키지 않도록 모범 되는 가정 꾸리고 싶다. - 아내에게 한 마디? "부족한 나를 믿고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왕비처럼 모시고 살겠다."
- 집을 휴대폰처럼 가지고 다니는 설치미술가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글로벌작가로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날린 서도호(徐道濩 Do Ho Suh 1962~)의 개인전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이 삼성미술관 리움 에서 6월 3일까지 열린다. 설치, 조각, 영상, 드로잉, 오브제 등 43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세계를 잘 드러내는 근년의 전시를 독창적으로 재구성했다. 부모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뿐만 아니라 뉴욕 등에서 1년 이상 살았던 집 5채를 형상화한 이번 시리즈는 이미 런던, 시애틀 등에서 전시했지만 서울에선 처음이다. 그리고 시애틀미술관에서 선보인 '문'(Gate) 시리즈의 리움 버전은 퍽 인상적이다. 작가는 "작품 앞에서 관객이 잠시 일을 내려놓고 휴식과 공감, 사색과 철학의 시간을 열어준다면 성공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전시를 본 국내관객은 한국미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게 되고, 각자 나름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경험한 한옥, 창작의 진원지 서도호는 10살 때부터 부친인 서세옥 화백이 덕수궁 내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지은 성북동 한옥에 살았다. 그런 한옥에 산 경험이 그가 예술창작의 진원지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당시는 개발붐시대라 사람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둘리 없었지만 서도호의 집 분위기는 그의 아버지 영향인지 남달랐다. 공간에 옷을 입힌다는 개념으로 만든 위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북쪽 벽을 천으로 재현한 것이다. 집도 휴대폰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발상이 참으로 앞섰다. 작가는 뉴욕에서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려서 몸을 편하게 눕혔던 성북동 집과 그 창호지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며 바람소리 그리고 사람이 북적거린 일상의 소리도 그리웠을 것이다. 그런 열망이 작품의 단초가 되어 물아일체의 동양미를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이런 작품을 잉태한 것 같다. 한옥의 예술화로 미술의 새 지평 열다 서도호는 1991년부터 미국생활을 하는데 서울 집과 너무 다른 뉴욕 집에 살면서 쇼크를 받고 두 문화의 차이점이 뭔가를 오랫동안 고민한다. 그런 심사숙고 끝에 1999년 드디어 LA 한국문화원전시에서 '서울 집/LA 집'을 선보인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그는 그것을 세계인이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예술로 전환시킨다. 1999년 작품이 업그레이드된 위 '서울 집'은 시뮬라크르 방식으로 한복에서 쓰는 여름용 견직물인 은조사(銀造紗)를 입히고 기둥, 창살, 서까래, 기왓장 등 일일이 바느질하면서 얼개와 모형을 갖춘 수작이다. 어머니 자궁 속처럼 편해 보여서 너무 좋다. 또한 살굿빛 모시두루마기로 만든 백남준의 유작 '엄마(2005)'도 생각나게 한다. 선녀를 연상시키는 쑥색의 우아한 색감은 특히 한국인의 감수성을 건드린다. 관객마다 동경하는 '집'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면서 신기루 같은 환영도 보여준다. 게다가 21세기의 투명함, 유연함, 경쾌함, 빠른 이동성 같은 시대정신까지 담겨 있어 매우 현대적이다. 서도호의 디테일한 아름다움 서도호의 드로잉도 그렇지만 한복감으로 만든 전매특허품 같은 베를린 집 복도의 표본을 보면 그 디테일한 공법에 전율이 오고 소름끼칠 정도다. 문 손잡이며 수도관 등 소품도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한반도 옛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문화재의 재현이라고 할까. 오브제로서 서양가구를 이렇게 한복의 투명한 천으로 감싸니 그 감칠맛이란 뭐라 형용할 수 없다. 반투명 천에 한 땀 한 땀 박아서 만든 그 세심하고 꼼꼼한 한국 어머니의 손바느질 솜씨가 연상되고 그 정갈한 맵시가 찡하게 느껴진다. 집 통해 '나와 너, 우리'를 다시 묻다 이번에는 한국의 집과 서양의 집을 합친 형태로 만든 작품을 감상해 보자. '집 속의 집 1/11'은 미국 집 안에 서울 집이 안긴 형태다. 작가도 미국문화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젠 거기에 익숙해졌다는 뜻인가. 서도호는 이렇게 집을 통해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디지털유목시대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누군지 되묻는다. 내가 남의 안에 있어도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이런 작품을 착상했으리라. 서도호는 이렇게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을 넘나들며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나와 너의 정체성과 관계성이 상충되지 않으며 결국 동양과 서양이 서로 구별하거나 경계를 짓는다는 게 불가능함을 함의하고 있다. 동서의 충돌 녹여낸 융합의 미 '별똥 별'은 성북동 한옥이 태풍을 맞고 날아와 작가가 사는 뉴욕 브루클린의 서양 집에 박힌다는 엉뚱한 상상력에서 온 것이다. 이국에 살면서 동서의 거부감과 이질감, 갈등과 충돌이 있으나 오히려 그런 요소를 융합의 장으로 바꿔 역으로 창조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실물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이 작품은 2009년 LA카운티미술관에서 첫 선을 보인다. 건물내부에 집 구조 등 동서의 다른 건축양식을 압축한 것이다. 디테일하게 재현한 속을 들여다보니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극사실적이다. 그 빼어난 수작업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런 참신한 발상은 대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다. 작가가 뉴욕생활을 하면서 다국적 다문화 경험이 누적되면서 생긴 것인가. 이걸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동서양문화, 개인기억과 집단기억이 함께 빚어낸 발명품이라고 명명해도 좋으리라. 미의 유혹자가 연출한 '문(Gate)' 시리즈 끝으로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문' 시리즈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2006년 시애틀미술관에서 선보인 것인데 리움 버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장소 특정적 전시의 묘미를 실감나게 맛보게 한다. 한국의 건축과 애니메이션을 환상적으로 결합하여 신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 각별함은 역시 착시와 환영을 주는 그림자효과에서 온다. 미의 유혹자로서 서도호의 역량과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바꿀 줄 아는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서도호는 이렇게 삶에 대한 기억으로서 꿈의 공간에 펼치는 작업으로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우리 것의 진수를 돌아보게 하고 질 높은 한국미의 체험이 우리문화와 가장 빠르게 소통하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우리 것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도 더 창의적이고 세계적인 사유를 하도록 유도한다. 집을 옷처럼 짓는 작가 서도호(Do Ho Suh), 그는 누구인가 서도호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회화를,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서도호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뉴욕 PS1 그룹전에 참여한 것이 2000년임을 생각한다면 이후 10여 년간 그의 활동은 눈부시다. 그의 지명도는 세계 대형미술관에서 1년에 15곳 이상에서 작품을 선보여야 할 정도로 세계적 작가로서의 위업을 발휘한다. 최근 한국작가 중 단연 돋보인다. 서도호는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었고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도 초청되었다. 휘트니 미술관, 모리 미술관 등 세계 유수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고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 세계 축구, '돈'으로 역사 사게 되나?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무차별적 선수 영입을 단행하고 이적시장에서 이적료를 부풀리는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를 겨냥해 "돈으로 선수를 살 수 있지만 역사와 클래스를 살 수는 없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 말은 올 시즌에 통하지 않았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이러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막대한 자금력은 역사의 시작을 만들어냈다. 2011~2012시즌에는 세계 클럽 축구를 돌아보며 그러한 예를 들 수 있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시티, 마침내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클럽 인수 이후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첼시, 막대한 자금력을 투자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거머쥔 프리메라리가의 말라가, 러시아 프로축구계를 뒤흔드는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안지 FC 등을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또한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도 그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바로 이장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중국의 광저우 헝다였다.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승격한 첫 해인 2011시즌에 중국 C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12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챔피언인 전북 현대, J리그 챔피언인 가시와 레이솔, 태국 리그 챔피언인 부리람 유나이티드가 속한 죽음의 조인 H조에서 1위를 차지하교 16강에 진출했다. 8억 6907만 유로, '막대한 자금' 투자해 우승 거둔 첼시 돈으로 역사와 클래스를 사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과거에도 그 사례는 있어 왔고 특히 2011~2012시즌에는 그 사례가 많았다. 첼시의 경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선수 영입에 대해 많은 투자를 했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해냈지만 그가 원한 것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감독을 바꾸는 인내심 없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지만 결국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서 값진 우승을 이루었다. 선수 영입과 감독 교체로 인한 위약금 등 무려 8억 6907만 유로(1조 2900억원)의 돈을 쏟아부은 끝에 만들어낸 우승이었다. 첼시보다 더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맨시티는 2008년 9월 셰이크 만수르 알 나얀 구단주가 부임하면서 4년 안에 우승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선수 영입과 유소년 시스템, 경기장 시설 등 전반적인 부분에 아낌없이 투자했고, 우승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맨시티의 총 투자금액은 10억 파운드(약 1조 8천억원)이었고, 만수르 구단주는 기다리는 성향을 보여주며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에 대한 신뢰를 보냈고 QPR과의 시즌 최종전을 찾은 관중들에게 10경기 무료 입장권을 선물하는 모습도 보였다. 프리메라리가의 말라가 또한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성과를 얻어냈다. 말라가는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을 영입하고 최근 은퇴를 선언한 루드 반 니스텔루이와 제레미 툴라랑, 산타 카솔라가 중심을 잡고 2010년 세군다리가의 라스 팔마스에서 350만 유로(약 52억 원)를 주고 데려온 호세 살로몬 론돈도 9골 4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해 4위에 올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거머쥐었다. 광저우 헝다는 이장수 감독을 경질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우승을 이끈 마르셀로 리피 감독을 선임하고 선수 영입에 막대한 자금력을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다. 다리오 콘카는 세계 축구선수 연봉 순위 3위에 올라 있고 파라과이 공격수 루카스 바리오스도 영입했으며, 유벤투스를 떠난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의 영입도 노리고 있다. C리그의 경우 광저우 헝다 뿐만 아니라 광저우 부리, 상하이 선화, 베이징 궈안 등이 세계적인 선수 영입을 목표로 막대한 자금력을 투자하고 있다. 지속적인 운영 능력도 중요... 리버풀 자금 투자하고도 실패 '돈으로 역사와 클래스를 산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샀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시작점을 마련했어도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느냐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첫 시작을 잘한 사례들이 앞에서 제시되었지만 첫 시작조차 잘하지 못할 경우 돈 낭비가 될 수 있다. 2011~2012시즌 리버풀은 선수 영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도 프리미어리그 8위에 오르며 자존심을 구긴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프로 스포츠에서 자금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자하며 클럽의 건설적인 토대를 만들어가느냐의 여부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맨시티와 말라가의 경우 시작을 알렸고, 첼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으며, 광저우 헝다 또한 결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이 세계 클럽축구를 흔든 2011~2012시즌, 돈 자체도 중요하지만 금전 만능주의가 아닌, 돈을 어떻게 활용하여 역사와 결과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시즌이었다.
- 돌아온 학교, 난 '이단아'가 돼 있었다
학교에서 탈출하기 초등학교와는 확연하게 다른 중학교 생활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14살, 중학교 1학년. 예쁜 교복, 멋있는 선배들, 이동 수업 등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자 학교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건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즐거움은 오로지 친구들과 노는 것. 나는 시곗바늘만 바라보며 남은 시간을 교과서에 도배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나는 '짧은 인생을 이렇게 허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 홀로 학교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자, 엄마가 읽어보라며 줬던 <민들레>가 교과서가 되었다. <민들레>를 통해 얻은 선배들의 경험담과 내 경험담을 토대로 눈물 연기까지 준비를 마친 후 엄마에게 선보이려던 차였다. 엄마는 눈물 연기를 시도하기도 전에, "그럼 가지 마" 하고 맥을 끊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So cool' 한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아빠의 반대가 심했다. 집에 있게 되니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늦잠자고 컴퓨터만 붙잡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게 더 허송세월인가 싶어 불안감도 덮쳐왔다. 결국 겨울방학이 끝나자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돌아온 학교에서는 난 이미 '이단아'가 되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은 날 수시로 불러 괴롭혔고, 결국 엄마가 담임선생님에게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게 되었다. 참고로 엄마는 친구에게 맞고 온 나를 이유가 있어서 맞은 거라며 신경 쓰지 않던 사람이었다. 선생님들은 머리가 1cm 길다는 이유로 쇠파이프로 때리는가 하면, 교무실 선생님들 앞에서 교복이 짧다는 이유로 손찌검을 하기도 하고 옷을 제멋대로 잡아당기기도 했다. 옷 만들기 동아리에 가입한 후배의 담임에게서 나와 내 친구들은 '쓰레기'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학교에서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선생님들은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모두가 같아야만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과 동화되지 않으려 애썼다. 모두가 같은 길을 바라보고 같은 생활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히고 끔찍했다. 아빠는 길고 길었던 방황의 시간 속의 나, 매일 밤 울다 지쳐 잠들던 나를 지켜봐 왔기 때문인지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 내 의사를 존중해줬다. 진짜 배움을 찾아서 2007년 5월이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한 3월부터는 집에서 재봉만 배우며 지내니 또래가 그리웠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물색하다가 하자센터에서의 사진수업을 듣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가 많은 그 공간이 매혹적이기도 했지만 '판돌'이 매력적이었다. 하자에는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는 나이 많은 친구, '판돌'이 있었다. 그렇게 하자를 시작으로 '공간 민들레'를 찾아갔다. 민들레를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아직 '선생님', 나이 많은 어른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할 때였다. 길잡이인 '혜숙'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내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수첩에 끊임없이 적기 시작했다. 경찰에게 조사받는 기분이 들어 기분 나쁘기도 하면서 '선생님', '나이 많은 어른'에게 받는 관심이 당혹스럽지만 기분 좋기도 했다. 늘 돌이켜 볼 때마다 무엇 무엇을 했었다, 배웠다가 아니라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곳이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실질적인 수업이나 배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존중받는 법을 배웠다. 여전히 민들레는 끊임없는 '배움'의 공간으로 함께하고 있다. 19살, 친구들이 고3이라는 타이틀을 걸자 나도 또래처럼 '수능'이라는 목표를 두고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공부하겠다는 선언을 하고는 재수학원에 들어가 1년간 수능 공부를 했다. 이전까지 '집중'이란 건 어떤 걸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로 집중력이 없었는데, 학원에서 영어 수업 도중 이게 집중이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해서 하게 된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하면 할수록 느는 것도 좋았고 시를 해석하거나 영어 문단을 해석하는 게 재미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짜 공부란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수유+너머'의 '대학생 강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철학자나 철학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터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열등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나 싶었지만 막내라는 호칭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두 달간 박지원과 니체를 공부했으나 '박지원' 선생님은 나에게는 너무도 먼 그대였다. 내 눈에는 그저 견문록뿐인 걸 무엇이 대단하다는 건지 무엇을 느꼈다고 해야 하는지 몰라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에세이 하나 제대로 내지를 못했다. 하지만 니체는 달랐다. 니체를 접하는 순간, 심봉사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는 내 삶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순해서 울지도 않고 혼자 잘 놀았다고 했다. 어려서 떼를 써 본 기억도 별로 없다. 갖고 싶은 게 생기면 만만한 동생을 꾀어서 부모님에게 사달라고 조르게 했고, '인형'이 갖고 싶지만 부모님이 '물감'이라고 말하면 더 좋아할 것 같아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물감'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항상 준비물을 2배씩 챙기게 해서 안 가져온 친구에게 빌려주라고 했다. 그런 내 습관이나 성격으로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착한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래서 어린 나는 내가 착하게 굴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내 주관보다는 남의 주관에 맞추는 사람이 되어버려 내가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니체를 만났다. 니체는 그런 나에게 '네가 바로 노예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의 삶에 주체자가 아니라 남의 인생의 들러리로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내 안의 가식과 허물을 벗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노력했다. 내 인생의 주체자가 되기 위해. 나를 찾아 떠난 여행 니체를 열심히 배웠건만 그 힘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스무 살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남들은 대학 가서 잘만 놀고 있는데 난 놀 줄도 모르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미대 입시용 그림만 그려대는 내 모습이 탐탁지가 않았다. 스무 살인데. 결국 호주 사람과 결혼한 사촌 언니를 따라 호주로 떠났다. 아무 준비도 없이 언니 하나 믿고 갔다가 하나둘씩 부딪히는 문제들은 당황스러웠다. 들고 간 돈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다 써 버렸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자는 언니들이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돈 얼마 받았느냐며 언제 받았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고, 얼른 일자리를 구해서 네가 번 돈으로 생활하라고 볶아댔다. 결국 언니들의 등에 떠밀려 시작한 일은 '청소'였다. 큰 슈퍼마켓에서 낮 시간에 잠시 큰 밀대로 밀고 더러워진 곳을 대걸레로 닦는 정도였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스스로가 스스로의 모습이 초라하고 우울했다. 결국 한 달이 지나 다시 백수가 되어 도서관에서 영어 공부를 하거나 그 지역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잠잠하던 언니들이 또다시 시끄러워지자 다시 일을 구했다. 이번엔 동네 쇼핑센터의 양말, 모자, 스카프를 파는 가게였다. 중심지에 있는 큰 쇼핑센터였지만 여름이라 손님이 많지가 않았다. 뻥 뚫린 구조여서 2층에서 아이들이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서 나를 무시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옆 부스에서 일하는 친구와 친해지자 나를 무시하건 말건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로 일도 재밌어졌다. 심심할 땐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친구가 물건을 사러 오면 사장님 몰래 하나를 더 주는가 하면, 서로 자기 나라 음식을 가져와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친구는 친하게 지내던 한국 오빠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오빠는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외국인 친구와 내 사이가 어색하게 되었다. 유일한 여자 외국인 친구라 속상했지만 나 역시도 4개월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 질려 있었다. 또다시 일을 그만두었다. 이번에는 적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최대한 적게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게 내 목표였다. 언니들과 나의 타협 선이었다. 언니들과 형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언니네 집과 정반대에 위치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근무지는 이사하게 된 동네 쇼핑센터의 핸드폰 가게였다. 핸드폰 수리도 하고 액세서리도 파는 가게로 주 3일 정도 일했다. 이 일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장이 멀리 있는 점을 이용해 눈속임수로 돈을 빼돌리는 식이었다. 페이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인데도 이런 식으로 돈에 목숨 거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전에 나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만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벗어나 버리고 싶었다. 민들레가 너무 그리워졌다. 결국 나는 한 달간의 휴가 기간을 가지고서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말하기가 무섭게 달려들 줄 알았던 언니들은 생각보다 잠잠했다. 언니들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내 생각이 그렇다면 반대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언니들은 처음으로 내 의견에 지지를 보내주었다. 호주에서 돌아온 나는 예전의 나와 많이 달랐다. 집에서 쉬고 엄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안에서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바라보았다. 여전히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 했지만 후에 그 이야기를 계속 곱씹으면서 순간적으로 휩쓸리지 않았다. 타인에 의해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나는 지금은 재미없을 정도로 '무'의 상태다. 재미있고 즐겁지만 그 상황이 끝이 나더라도 우울해지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나를 자책하거나 멋대로 부풀려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도 원래 이렇게 될 일이었다며 집착하거나 잡아두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고민 많은 20대 노디로 살아가는 중이다. ☞ [홈스쿨러 부모들을 위한 기획 강좌] 안내 바로가기
- 문재인 "이한구 대표 막장 트윗, 새누리당 적개심 표출한 것"
'참 나쁩'니다. 아니 '잔인'합니다.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릅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분노를 넘어 서글픔마저 듭니다. '노무현'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살았을 때도 '개구리'에 비유하거나, '대통령'이란 직책을 그토록 붙이기 싫어하더니 서거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모독하기 바쁩니다. 지난 2011년 6월 19일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같은 해 7월 4일 치른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출마 기자회견후 가진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그 사람이 자기 정치하다가 자기 성깔에 못이겨 그렇게 가신 분"이라며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 이상하게 개나 소나 다 대선에 나오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니다. 내공이 있는 사람"고 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한구 "노무현 xxx지 잘 xx다" 리트윗 그리고 이번에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이한구 의원이 지난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자가 참여정부 시절 두 번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특별복권을 받았다"는 글을 리트윗했습니다. 그런데 한 트위터라인이 쓴 "노무현 XXX지 잘 XX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독한 욕설까지 리트윗했습니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원내대표는 즉각 사과글을 올리고 관련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이한구 의원실은 "우선 지난 19일의 트위터 리트윗 건으로 물의가 초래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한다"면서 "해당 리트윗은 대표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며, 이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비록 실수와 착오가 있었다 할지라도 저희 트위터 상에서 벌어진 일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또한, 이번 일로 고인과 유족의 명예에 누가 되고, 아픔을 가중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새누리당 모독은 한나라당 시절부터 자주 있었습니다. 지난 2004년 8월 한나라당 의원 24명으로 구성된 '극단 여의도'가 전남 농촌체험마을에서 공연한 '환생경제' 연극에서 '육시랄 놈',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개쌍놈', 'X알 달 자격도 없는 놈'같은 막말도 아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급하고, 저급한 말을 쏟아냈었습니다. 아직도 당시 동영상을 보면 노무현을 향한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있습니다. 특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연극을 보면서 웃는 모습은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 노무현을 향한 증오 뼈에 사무쳐 그리고 지난 2005년 5월 우익 인터넷신문 <독립신문>은 한 저격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미간을 정조준하며 "한 번만 더 민족의 원수 김정일 두둔했다간 니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는 내용의 영화 <스나이퍼> 패러디물을 올렸습니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신문은 16일 만화만평 코너에 "독자투고 작품"이라며 "김정일 정권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 대통령 발언을 풍자한 것이라고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했었습니다. 대통령 저격을 풍자라는 그들 정신 세계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지난 7일에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목을 베는 끔찍한 만화를 이준석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 전 비대위원이 직접 그린 만화는 아니지만 올린 만화는 한 마디로 '끔찍'함 그 자체였습니다. 만화 내용을 보면 "이렇게 많은 보수들이 모여 있으면서 문재인의 목을 벨 만한 후보 하나 없단 말이냐", "그런 기개로 어떻게 노빠를 칠 수 있단 말이냐", "그런 기개로 어떻게 노빠를 칠 수 있단 말이요", "그 말씀은 좀 지니치신 것 같습니다, 명만 내리십시오. 제가 재인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오 재인의 목이다"라는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문재인, 자신 모독은 참았지만 노무현 모독은 참지 못해 이 전 비대위원은 문 이사장을 직접 찾아 머리 숙여 사과했습니다. 자신을 모독한 것은 용서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모독한 것은 참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20일 자신의 트위터(@moonriver365)를 통해 "이한구 대표 막장 트윗. 개인적으론 그의 인품 문제지만, 집단적으론 이준석 만화와 함께 새누리당의 적개심, 증오감의 표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이한구 원내대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새누리당 전체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 이사장은 이어 문 상임고문은 "증오와 적대의 정치,보복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 노대통령 서거가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교훈인데, 새누리당은 정말 반성이 없습니다"라며 "대결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 싸움질만 하는 정치를 끝내려면 국민이 그런 정치 세력과 정시인을 도태시켜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평소 절제된 단어를 쓰는 문재인 이사장이 이번 리트윗에 얼마나 분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리꾼 "문대성 베껴바라, 김형태 벗겨봐라, 이한구 주기바라" 누리꾼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kbh8***는 "이한구, 노무현 xxx다 리트윗 논란 이건 사람이 아니구나!! 어떻게 새누리당 것들은 사람인 것들이 하나도 없는가!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도 갖추지 못한것들이 무슨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인가! 한심하다!"며 이런 정당은 국가 경영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ostwr****는 "김문수는 체게바라, 문대성은 배껴바라, 김형태는 벗겨바라, 이준석은 잘라바라, 이한구는 주기바라, 이석기는 디비바라, 김재연은 버티바라, 이것들바라"고 힐난햇습니다. @naggo***는 " 이준석 페이스북에 문재인 목따는 만화 올린게 얼마나되었다고 또다시 이한구 대표 트위터에 노무현 **끼 잘뒈졌다며 리트윗이 올려졌다. 새누리당이 얼마나 비열하고 추악한지 다시한번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다" @ohud**** "'노무현 개xx 잘 xx다'를 리트위한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의 정신세계로는 충분히 용산참사, 쌍용사태로 죽은 이들에게도 "가난한 개새끼들 잘 뒈졌다"라고 생각하겠지? 국민 여러분 잘 뒈지기 전까지 잘 사셔야겠어요!"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사과 한 마디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정치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증오가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깊고 넓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사무칩니다.
- "이모, 무서운 책 골라주세요"
"고3때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하고 난후, 언젠가는 이 도서관에 근무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13년 뒤에 그 꿈이 실현되다니 신기했죠." 안성보개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김주희(35세)씨의 말이다. 고3때 생각했던 꿈이 30이 넘어서 이루어진 경우다. 이런 그녀의 삶의 현장인 보개도서관을 지난 18일에 찾았다. "아이들 이름도 많이 외워요" 자신이 근무하는 보개도서관은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일단 자랑부터 하는 김주희 사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을 자주 보다보니 아이들 이름도 많이 외운단다. 아이들은 '선생님, 아줌마, 이모'등으로 자신을 불러주지만, 역시 이모가 정겹다. 아이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이모, 무서운 책 어디 있어요. 책 좀 골라주세요"라고 주문해온다. 저학년 아동일수록 '귀신 이야기'등을 다룬 책을 좋아한단다. 고학년쯤 되면 이모에게 묻지 않고 자신들이 알아서 책을 고른다. 자신들끼리 도서관에 온 아이들은 간혹 이모에게 휴대폰도 빌려 달라 한다. 부모에게 전화하기위해서다. 학교생활, 학교성적, 친구문제 등으로 간혹 이모에게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상담도 이루어지는 경우다. 어른들은 고맙다며 별의별 것을 갖다 주기도 한다. 밭에서 기른 채소와 과일, 집에서 만든 잼, 슈퍼에서 산 빵, 밥 태워 만든 누룽지 등. 시골정서가 살아 있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재미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란 편견은 버리세요" 이젠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은 아니란다. 요즘 도서관은 문화생활 전반을 다룬다고. 안성만 해도 그렇다. 안성 공도 쪽 도서관은 아동 대상 프로그램이 활발하고, 중앙도서관은 성인 대상 프로그램이 활발하고, 보개도서관은 문학테마도서관으로 활발하다. 각 도서관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그녀가 근무하는 보개도서관은 사실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다. 1968년도 안성최초로 생긴 안성도서관이 보개도서관의 전신이다. 그 도서관이 1996년도에 현재의 위치인 보개도서관으로 자리 잡았다. 17년 정도의 역사이다 보니 초등학교 때 도서관을 이용했던 아이가 시집장가를 가기도 했다. 이런 도서관에 위기가 오기도 했다. 2008년 안성중앙도서관이 생기면서 도서관 이용률이 급감했다. 보개도서관의 존폐위기까지 왔다. 이때 보개도서관을 살려보자는 도서관 이용자와 공무원이 힘을 합쳤다. 의논을 거듭한 결과, 2010년도에 문학테마도서관으로 거듭났다. 2011년도엔 재개관이라는 역사를 이루었다. 도서관 이용자가 열정을 쏟아 도서관을 살린 아름다운 사례라 하겠다. 이제 1년 4회 문학관련 공연, 안성문학기행, 할머니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하는 글쓰기, 저자 강연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사서인 김주희씨는 책만 아니라 문학관련 행사 준비에도 늘 바쁘다. "좋은 책 추천해달라면 보람이자 부담이기도 해" "어떤 어머니는 아이들을 어렸을 적부터 학원에 보내지 않고 도서관에 데리고 다녔어요. 그 아이들이 영재시험에 합격했죠. 도서관에 고맙다는 말을 해오면 얼마나 보람 있는지 몰라요."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오는 것을 자주 본단다. 김주희씨 또한 5세의 딸과 함께 도서관에 자주 오다 보니 딸아이도 책을 좋아한다고. 자신의 아이가 책을 즐겨 읽기에 "엄마의 체면이 살았다"며 그녀가 웃는다. "좋은 책 좀 추천해주세요"란 말을 자주 듣는 김주희 씨. 이런 말을 들으면 좋으면서도 부담된다고. 사서에게 거는 기대가 있어 좋은 책을 추천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다. 가급적이면 자신이 읽어본 책, 사서들끼리 검증한 책 등을 추천한다고. 베스트셀러는 본인들이 더 잘 알아서 선택하기에 잘 추천하지 않는 편이란다. 책을 추천해줬을 때, "그 책 재밌었다. 유익했다. 좋았다. 그래서 고맙다"는 반응이 오면 기쁨은 배가 된다. "책에 대한 반응이 시원찮을 땐 표현을 하지 않으시니 모를 일"이라며 웃는 그녀. 요즘은 도서관이 추진하는 문학행사에 시민의 호응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고. 도서관 이용자들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그녀는 천생 사서인가보다. 거기다가 자신의 이야기보다 도서관을 많이 홍보해달라는 그녀는 천생 '보개도서관 우먼'이 맞을 듯.
- [단독]'영화 은퇴?' 성룡..."은퇴는 오해, 스턴트 줄이고 계속 출연"
마치 일종의 부고 기사를 쓰는 심정이 들 뻔 했다. 칸 영화제에서 날아온 아시아가 낳은 세계적 액션 스타 성룡의 액션영화 은퇴 소식 말이다. 다행이다. 결론적으로, 성룡은 액션영화를 완전히 그만 찍을 생각이 없단다. '이게 다 오해였다'단다. 성룡은 지난 18일(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개최 중인 제65회 칸 영화제 <12 차이니즈 조디악 헤즈> 기자간담회에서 "액션영화에서 은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이 대서특필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성룡은 20일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이 같은 발언에 오해가 있었음을 밝혔다. 성룡은 "기자회견 장에서는 <12 차이니즈 조디악 헤즈>가 대작 액션영화로는 마지막이라 말했을 뿐이다"며 "다음 날 자고 일어났더니 은퇴 기사가 대서특필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성룡은 "모두에게 내가 액션영화에서 연기하는 것을 은퇴하는 것이 아님을 알리고 싶다"며 "진위는 영화 속에서 아주 위험한 스턴트 장면을 연기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밝혔다. 성룡은 또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스턴트 장면을 연기했고, 그 만큼 많은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제는 더 오래 연기를 해나가기 위해 내 몸을 더 돌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제적인 액션영화에 출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액션 장르에서의 전면 은퇴는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성룡은 "And I will keep improving my English :- " 란 메시지로 녹슬지 않은 유머 감각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이에 앞서 성룡은 자신의 100번째 영화 < 12 차이니스 조디악 헤즈 >의 홍보 기자회견에서 "액션영화를 하기엔 너무 지쳤다. 최근 액션 영화 이외에도 다른 정극 연기를 꾸준히 해왔다. 앞으로 아시아의 로버트 드 니로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혀 국내외 영화팬들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올 12월 전세계 개봉 예정인 < 12 차이니스 조디악 헤즈 >는 1980~90년대 국내에서도 흥행 성공을 거둔 <용형호제> 시리즈의 3편 격으로 알려졌으며, 권상우와 유승준이 출연,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 11미터 룰렛의 희비 겪은 '첼시 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페드루 프로엔사(포르투갈)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렸다. 파란 옷의 첼시 FC 선수들은 서로 뒤엉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뮌헨의 슈바인슈타이거는 옷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골 라인으로부터 딱 11미터 지점에 찍어놓은 작은 점 하나가 120분이 넘도록 땀 흘린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붉은 옷을 입은 안방 팬들은 이 결과가 믿기 어려운 듯 머리를 감싼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흔히 11미터 룰렛이라고 불리는 축구장의 승부차기가 만들어내는 잔인함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첼시 FC(잉글랜드)는 우리 시각으로 20일 새벽 뮌헨에 있는 푸스발 아레나에서 벌어진 2011-2012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FC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최종 맞대결 1-1로 비긴 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이겨 감격적인 첫 우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손가락을 깨문 '아르연 로벤' 경기 시작 후 20분이 조금 지난 시각 안방 팀 뮌헨의 간판 날개공격수 아르연 로벤의 왼발이 빛났다. 첼시 수비수들 틈바구니로 빠져나가면서 왼발로 선취골을 노린 것. 하지만 로벤의 왼발을 떠나 낮게 깔려나간 공은 각도를 잘 잡은 첼시 문지기 체흐의 다리에 맞고 골대를 때렸다. 이것이 불운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순간에도 로벤은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입으로 손가락을 살짝 깨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번 더 손가락을 깨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뮬러의 헤더(83분)와 드로그바의 헤더(88분) 골로 1-1을 만든 상태에서 맞이한 연장전 외나무다리 위에 로벤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연장전 3분만에 승리의 여신은 안방 팀 바이에른 뮌헨을 택한 것처럼 보였다. 리베리의 드리블을 따라가던 첼시 골잡이 드로그바가 발을 잘못 내밀어 그를 넘어뜨린 것이다. 프로엔사 주심은 단호하게 휘슬을 울리며 11미터 지점을 가리켰다. 페널티킥이었다. 승부차기를 걱정하던 뮌헨 선수들은 마치 승리를 거머쥔 듯 기뻐했다. 11미터 지점에 찍은 흰 점 위에 공을 내려놓은 주인공은 아르연 로벤이었다. 뮌헨의 옷을 입기 전에 첼시 FC에도 한동안 몸담으며 활약했던 그였기에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왼발 킥이 골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방향을 예측한 문지기 체흐는 왼쪽으로 몸을 던지며 가슴으로 막아냈다. 운명은 그렇게 로벤의 간절한 표정을 남긴 채 스쳐 지나가고 말았다. 연장전 후반전까지도 이토록 허무하게 끝나는 휘슬이 울렸다. TV 중계 카메라는 얄궂게도 이 순간에 로벤의 얼굴을 가깝게 잡았다. 손락을 깨물고 있는 로벤의 표정이 그 때까지의 모든 상황을 압축하고 있었다. 최후의 보루, '페트르 체흐' FC 바르셀로나(스페인)와의 준결승전 두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노란딱지를 받는 바람에 첼시 FC의 간판 선수들 중에 존 테리와 이바노비치가 결승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 둘은 없어서는 안 될 수비수였기 때문에 적잖은 축구팬들이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을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더구나 결승전 장소는 뮌헨의 안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디 마테오 감독은 어쩔 수 없이 '다비드 루이스-게리 케이힐'의 센터 백 조합을 선택했고 새내기나 다름없는 라이언 버틀랜드를 측면 미드필더로 내세웠다. 이처럼 외관상으로는 첼시가 밀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노련한 문지기 페트르 체흐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최후의 보루였다. 체흐는 연장전 초반에 로벤의 페널티킥을 결정적으로 막아낸 것도 모자라 승부차기에서도 반전 드라마를 만드는 디딤돌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첼시 첫 키커 후안 마타의 왼발 킥이 노이어의 선방에 걸리는 바람에 그 출발은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것이다. 더구나 뮌헨의 세 번째 키커는 놀랍게도 문지기 노이어였고 그에게 오른발 킥을 허용해 첼시는 1-3으로 궁지에 몰렸다. 2007-2008 시즌 모스크바에서 열린 결승전 승부차기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맞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게 5-6으로 패했던 불편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 체흐는 누구보다 침착했다. 뮌헨의 네 번째 키커 올리치가 강하게 찬 공의 방향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몸을 날리며 손끝으로 잘 쳐냈다. 이 때부터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슈바인슈타이거의 킥이 골문 오른쪽 기둥을 때리고 나왔다. 축구장을 내려다보는 승리의 여신이 첼시 선수들에게 미소짓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똑같은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주인공은 디디에 드로그바였다. 단 세 발짝만 물러나 오른발을 내뻗은 드로그바의 간결한 킥은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렇게 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대장정의 막이 내렸다. 2000-2001 시즌 결승전(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짜, 밀라노)에서 발렌시아 CF를 승부차기 끝에 5-4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던 바이에른 뮌헨은 11년만에 안방에서 트로피를 노렸지만 거기에는 장갑을 끼고 포효하던 전설적인 문지기 올리버 칸이 없었다.
- 당권파 당원비대위 출범 "진상보고서 폐기"
통합진보당 옛 당권파가 혁신비대위(위원장 강기갑 의원)에 대항하는 '당원비대위'를 꾸렸다. 이들은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보고서를 전면 부정하면서, 이석기·김재연 등 사퇴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누명을 벗기겠다고 다짐했다. 당원비대위 위원장을 맡은 오병윤 국회의원 당선자(광주 서을), 집행위원장 유선희 전 최고위원, 대변인 김미희 당선자(경기 성남중원)는 20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비대위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이들은 "진실규명과 당 명예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진성당원제 원칙을 사수하겠다"고 천명했다. 혁신비대위 대항 '당원비대위' 꾸려... "당 명예회복 위해 혼신의 힘" 오 위원장은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보고서를 "허위와 날조로 가공된, 당원들에게는 사망선고서나 다름없는 보고서"라고 힐난하면서 "진상보고서 폐기만이 당의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억울한 당원의 누명을 벗기고 당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대한 자체적인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뒤 오 위원장은 "분당은 결코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심상정·유시민·조준호 전 공동대표에게 현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 위원장은 지난 12일 중앙위 폭력사태에 대해 "폭력사태의 첫 출발은 의장단이 회의를 폭력적으로 운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혁신비대위에 대해서도 오 위원장은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 위원장은 "(중앙위에서 결정한) 진상조사특위 활동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 비록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 해도 혁신비대위가 당 쇄신과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혁신비대위가 잘 활동하길 바란다면 굳이 비대위를 별도로 구성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오 위원장은 "비대위가 통합정신에 맞게 구성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전달했지만 비대위원 결정과정이 통합정신에 입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당에서 공식적으로 구성한 비대위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것은 해당행위가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오 위원장은 "당원들이 억울한 사람들 누명을 벗기고, 당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모인 게 해당행위일 수 없다"고 일축했다. 혁신비대위 "명칭변경해야, 공식기구 부정하면 해당행위" 옛 당권파측 비대위 출범에 대해 혁신비대위는 통합진보당의 공식 대표기구는 혁신비대위임을 강조하면서 당원비대위에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 이정미 혁신비대위 대변인은 이날 "통합진보당의 대표기구는 지난 14일 중앙위 결정에 따라 구성된 혁신비대위이고 강기갑 위원장이 당을 대표하고 있다"며 "당의 공식기구가 비대위 명칭을 쓰고 있는 만큼 국민에게 두 개의 비대위나 권력으로 비칠 우려가 있는 '당원비대위'라는 명칭을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대변인은 "혁신비대위원회도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여 1차 조사과정에서 명예를 손상당한 당원이 있다면 그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 갈 것을 밝힌 바 있다"며 "당원비대위도 혁신비대위에 협력하면서 의견을 모아나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날 당원비대위가 혁신비대위의 구성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이 대변인은 "좀 더 (발언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해보고 논평하겠다"면서도 "통합진보당 내 자발적 당원 모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 모임이 혁신비대위를 부정하는 것은 해당행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첼시 107년 만에 우승 이끈 '드로그바'의 선택은?
'드록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디디에 드로그바에 의해 만들어진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다. 드로그바는 20일(이하 한국시각)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결정적인 동점골과 승부차기 마지막 골을 성공시키며 첼시의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홈 구장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르는 바이에른 뮌헨이 전체적인 경기를 주도했지만, 첼시는 강력한 수비를 통해 전반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바이에른 뮌헨은 전반 슈팅수 13-2로 앞서고도 득점을 해내지 못한 골 결정력 부족이 나타났고 첼시는 원활하지 못한 역습 전개가 아쉬움으로 다가왔던 전반전이었다. 후반 들어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은 더욱 강화되었다. 프랑크 리베리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무위로 돌아갔고 첼시의 애쉴리 콜은 두 차례나 바이에른 뮌헨의 공격을 막아내며 실점 위기를 넘겼다. 첼시가 플로랑 말루다 투입으로 공격적인 경기 운영을 하기 시작했는데, 후반 38분 바이에른 뮌헨의 토마스 뮐리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 분위기는 급격히 바이에른 뮌헨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드로그바와 페트르체흐의 활약 돋보인 첼시 그러나 첼시에는 드로그바가 있었다. 드로그바는 후반 38분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 수비를 따돌리고 헤딩슛으로 동점골을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칼링컵, FA컵 등 각종 결승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첼시의 우승을 이끌었던 드로그바의 득점 본능이 살아난 것이었다. 드로그바와 첼시에게 기쁨을 선사한 선제골이었다. 경기는 연장전에 접어들었는데, 전반 3분만에 바이에른 뮌헨이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앞서나갈 기회를 잡게 되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드로그바가 리베리에 파울을 범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페널티킥을 내주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키커로 나선 아르옌 로벤의 페널티킥은 첼시의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드로그바는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한 셈이었다. 결국 연장전이 끝나고 승부차기로 접어들었다. 바이에른 뮌헨은 3번 키커인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를 포함한 3명의 선수가 침착하게 득점을 해낸 반면 첼시는 1번 키커인 후안 마타가 노이어의 선방에 막히며 2-3으로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의 4번째 키커인 이비차 올리치의 슈팅이 체흐의 선방에 막혔고, 5번째 키커인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며 더이상 승부차기에서 득점을 추가하지 못했다. 반면 첼시는 4번 키커인 콜과 5번 키커인 드로그바가 침착하게 득점을 성공시켰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드로그바가 5번 키커로 나선 것이다.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드로그바는 승부차기에서 침착하게 득점을 해내며 첼시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7~200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퇴장을 당하며 경기장을 떠나야 했고, 2008~2009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심판의 잘못된 판정에 울분을 토해냈던 드로그바는 마침내 숙원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냈다. 첼시, 클럽 창단 107년 만에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로써 첼시는 클럽 창단 107년 만에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감격을 맛보게 되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를 인수하여 많은 감독을 경질하고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만들어낸 우승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6위로 부진했지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통해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극적으로 획득해냈다. 첼시에서 많은 우승을 이루어냈던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대행의 마지막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장식되었고, 첼시의 터줏대감인 존 테리와 프랭크 램퍼드를 필두로 디디에 드로그바, 애쉴리 콜, 페트르 체흐 등 첼시를 지켜온 황금 세대들이 만들어낸 마지막 선물이었다. 세대교체를 꾀하고 있는 첼시에게 이 황금 세대의 선수들은 정말 소중한 선물을 만들어주었고, 그 중심에는 드로그바가 있었다. 드로그바는 '결승전의 사나이', '황금세대의 선두주자' 다운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의 거취를 두고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중국 클럽들이 연결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드로그바의 첼시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드로그바가 선물한 최고의 기쁨인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더불어 올 시즌 이후 드로그바의 거취가 과연 어디가 될지 향후 그의 거취가 주목된다.
- ...화룡점정 류승룡, 감독은 지질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 개봉 하루 만에 박스 오피스 1위로 올라섰다.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영화다. 중심 스토리도 신선하다. 일본에서 운명적 만남으로 사랑하여 결혼했지만 7년이 지나자 아내가 챙겨주는 밥이 귀찮고, 아내가 걸어오는 말이 짜증을 주고, 아내의 벗은 몸은 되려 부담이 되고, 아내의 모든 것이 자신을 구속하는 것 같아 아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한 남자가 전설의 카사노바를 고용하여 아내가 먼저 이혼을 제안하도록 유혹 작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류승룡의 변신이 즐거워 영화가 재미있게 하는 힘은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에 있다. 류승룡, 이광수, 이선균, 임수정 등 배우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아주 잘 소화하고 있다. 특히 류승룡의 변신이 즐거웠다. 카사노바의 역할을 맡은 그의 연기는 영화 속 자신의 별명 '화룡점정'처럼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수염을 기르고 거친 피부를 가졌지만 부드러우면서 뜨거운 눈빛으로 여성을 바라보고, 부드러운 손길과 깊은 스킨십으로 여성을 점점 유혹에 빠뜨리는 자연스런 몸짓과 대사를 소화한 연기는 대단했다. 마치 현실에서 픽업아티스트가 여성을 유혹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듯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그의 여인들과 나누는 불어와 스페인어 등 외국어 발음을 들으면 많은 연습을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임수정은 남편이 지겨워하고 짜증스러워할 정도로 남편을 열심히 챙기고 잔소리하며 또 남편만 알고 사는 주부다. 그러나 가족의 대소사나 눈치보고 사는 것을 싫어하는 문제의식은 바로 직설 화법으로 표출하는 까칠한 역할이다. 그의 까칠하고 웃음을 주는 주부 연기보다는 카사노바 장성기(류승룡)의 작업에 점점 빠져들어가며 표현하는 얼굴과 몸의 관능적 연기가 훨씬 매력을 주었다. 목장에서 젖소의 젖을 짜는 것을 장성기가 가르쳐준다며 자연스럽게 손잡고 몸을 뒤에서 감쌀 때 내면의 떨림을 표현하는 표정 연기처럼 장성기와 친밀도가 깊어지면서 변화하는 얼굴색과 표정은 현실같이 살아 있었다. 라디오 피디역을 맡은 이광수도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영화 '간기남'에서는 덜떨어져 보이지만 날카로움이 담긴 대사를 찔러대 웃음을 주었는데, 여기서도 유부녀(임수정)에게 반해 헛발질하는 역할을 하며 영화에 재미를 더했다. 요즘 이광수가 연기하는 독특한 캐릭터에 점점 빠져든다. 잘 쓴 각본은 아니지만, 결혼 생활에서 오는 권태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재를 코믹한 상황과 대사로 구성한 것이 재미를 준다. 이것은 감독이 방향 설정을 잘 한 것이다. 영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감독의 용기 없음과 사랑에 대한 얕은 가치관을 고려할 때, 사회성을 부각시키는 영화로 같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감독은 분명 사랑과 결혼제도를 다루고 있다. 연애할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키스하고 차에서도 섹스하며 서로의 몸을 뜨겁게 갈구하던 남녀가 그 사랑의 결과로 결혼을 했지만 일상의 지긋지긋함은 이혼을 생각하게 한다. 두 남녀가 가정법원으로 가기까지 과정에서는 결혼 생활이 가지는 여러 문제들을 감독은 털어놓는다. 아내의 벗은 몸이 오히려 부담스러운데 같이 살아야 하는가? 신경 써주는 것이 구속으로 느껴지는데 같이 살아야 하는가?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를 귀찮아하는 남편을 보고 같이 살아야 하는가? 사랑이 없는데 왜 같이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가정법원 앞 점심시간 식당에서 운명적 첫 만남의 추억이 떠오르며 참고 살기로 결말을 맺는다. 연정인(임수정)과 이두현(이선균)의 말로 대신 표현하듯이 누구나 지겨워도 외롭기 때문에 참고 같이 산다는 것이 감독의 메시지다. 그리고 하나 더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라는 것. 감독은 가족제도와 사랑이 가지는 모순에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표현했으나 영화의 상업성을 위해 코믹함에 더 노력하며 제도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코믹함과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영화를 가져 갈 수 있지도 않을까? 이혼하고 싶었으나 정말로 아내가 카사노바에게 빠져들게 되어 외로워지고 불편해지자 다시 아내를 찾는 영화 속 이두현의 지질함을 민규동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데 드러낸 건 아닐까?
- "사장님, 제발 나가세요"... 간 큰 신입사원들
이들도 분명 그랬을 거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고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을 거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같은 국가 공인 시험이 아닌데도 '고시'라는 이름이 붙여져 극강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언론고시'. 그 좁은 문을 통과한 순간, 그들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한 뿌듯한 기분을 느꼈을 거다.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의 질투에 가까운 부러움을 뒤로 하고 언론 스터디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이런 상상을 했을 거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취재 현장을 누비며 '거악'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신입기자. 그런데 꿈에 그리던 입사를 하고 수습교육까지 다 마친 지금. 그들은 취재 현장 대신 파업 현장에서 거악이 아닌 '사장님'과 싸우고 있다. 최종면접장에서 간절하게 바라보던 그 사장님과 싸우게 된 가혹한 현실을 이들은 상상이나 했을까. 지난 17일 <오마이뉴스>는 MBC, KBS, 연합뉴스의 새내기 조합원들을 만났다. 수많은 입사 동기들을 제치고 <오마이뉴스>의 인터뷰이로 '간택(?)'된 이들은 MBC의 이동경 기자(30), KBS의 홍성희 기자(29), 연합뉴스의 김수진 기자(27)다. 파업 중이지만 집회 및 율동연습 스케줄로 바쁘다는 세 사람을 최근 '언론사 파업의 성지'로 떠오른 여의도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인터뷰 장소인 여의도의 한 커피숍으로 들어올 때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터뷰 당하는 건 처음인데다 회사 대표로, 그것도 파업 중에 인터뷰를 하려니 긴장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되자 이들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인 지망생 신분이었던 이들은 현직 언론인이 되어 바라보는 언론사 파업, 채용과정에서 겪었던 경험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다음은 세 사람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김수진(이하 김) : 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지난해 11월 1일 입사. 5월 1일부터 파업 참여. 이동경(이하 이) : MBC 사회2부 기자. 올해 1월 31일 입사. 5월 1일부터 파업 참여. 홍성희(이하 홍) : KBS 정치외교부 기자. 지난해 8월 1일 입사. 3월 2일부터 파업 참여. "'이런 기사를 '연합 찌라시'에서 썼을 리 없다' 댓글 보고 충격" - 왜 언론인이 되었나? 김 : 대학 새내기 때 학교에서 일하시는 청소 어머니와 같이 청소하고 밥을 지어 먹으며 하루를 같이 보내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행사를 하고 나서 깨닫는 게 많았다. 행사 이후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학내에 많이 알려졌고 분위기도 좋아졌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숨겨진 이야기를 잘 캐내어 알려주면 보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언론인이 되기로 했다. 이 : 언론인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려준다는 사실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쉽게 타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자기만 그것을 알고 독점해야 자기 자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인과 언론인의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했다. 홍 : 환경 감시나 사회 감시를 하며 사회를 개선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시민단체 활동가 같은. 또한 대학생 때 학생기자를 하면서 취재하거나 글 쓰는 데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런 것들을 종합하다 보니 기자가 되었다. - 수습이 끝나자마자 파업하게 되었다. 소감은 어떤가? 김 : 한참 일을 배워야 할 시기인데 파업에 참여하면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할까봐 우려했었다. 하지만 입사하고 나서 저희를 계속 가르쳐 주고 혼내고 보듬어 주고 그랬던 선배들이 23년 만에 일터를 박차고 나가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습 끝나고 파업 참여 전까지) 2달 정도 선배들 없이 일을 하는데, 밖에서는 선배들이 공정보도를 외치고 있는데 나 혼자 기자실에 앉아 기사를 쓰는 게 잘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홍 : 일을 못 배운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파업을 하면서 확실히 배우는 것도 있다. 기자가 좋은 기사를 쓰는 데는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회사의 도움(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는 환경)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KBS는 탐사보도팀이 해체되고, 최경영 기자가 해임되는 상황이다. 공정 방송을 하자는 지금의 파업이 나중에 우리가 좋은 기사를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 보통 수습 때는 일을 배우다가 많이 혼나기도 하는데, 선배들이 파업 하느라 만날 기회가 없어 그런 경험을 못하니까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할까 봐) 오히려 두려웠고 걱정도 됐다. 수습이 끝나고 파업에 참여하면서 선배들이 '깨알' 같은 비법을 전수해 주셔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해소 되고 있다. - 요즘 일과가 어떤가? 이 : 파업 중에도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고 있다. 오전에는 선배들에게 리포팅과 기사쓰기 교육을 받는다. 오후에는 집회에 참석을 하고 집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방송뉴스를 모니터링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다음날 선배들에게 제출한다. 순번을 정해 6일에 한 번씩 여의도 공원에 있는 텐트에서 노숙 집회를 한다. 홍 : 오전 11시 반에 신관 로비에서 KBS 기자협회 차원의 피켓팅을 한다. 그 시간이 사측 관계자가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외친다. 2시부터는 모든 직종이 함께 모이는 본집회가 열리고, 오후 7시부터는 텐트촌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촛불집회를 한다. 그리고 '파업학교'를 만들어서 선배에게 강의를 듣기도 하고, 동기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독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리셋 KBS 뉴스 9>팀에 소속되어서 뉴스를 만드는 일을 한다. 아. 그리고 파업막내들이 피해갈 수 없는 '율동준비'도 많이 한다.(웃음) 김 : 첫 일과를 오전 8시 50분에 출근하는 사장에게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후 오전에는 회의를 하거나 노조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을 하기도 한다. 오후에는 명동 같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가서 파업을 알리는 시민 선전전을 하거나 회사 앞 광장에서 집회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회사 앞에 '공정보도텐트'를 설치해서 돌아가며 텐트를 지킨다. - 파업 참여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홍 : 일을 하다가 바로 파업에 참여해서 당시에는 충분한 고민을 못했다. 선배들은 부당한 데스킹을 직접 겪었지만 나는 겪지 못해서 그것을 잘 실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왜 파업을 하는지, 어떤 부당한 경험을 했는지를 물어봤다. 또 동기들끼리 뉴스 보도를 모니터하면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토론했다. 그런 과정에서 파업 참여 이유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 저 역시 선배들이 내건 파업 이유에 대해서 실감하지 못했다. 공정방송과 관련된 구호에 대해서 공감은 했지만 실감을 못했기 때문에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이 압도적인 찬성 비율로 파업을 결의하며 MBC에 신뢰의 위기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는 분명히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파업 참여 전 14명의 입사동기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랜 시간 이야기하며 의견을 나누었고 다들 파업 취지에 공감했다. 김 : 저도 역시 불공정한 보도에 대해서 선배들의 말에 머리는 동의를 하는데 직접 겪지 못했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 회사의 기자들이 현장에서 외면 받고, 심할 때는 충돌하기도 했다. 한 선배는 겨울에 쪽방촌에서 1달간 생활하며 체험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그 기사에 "이런 기사를 '연합 찌라시'가 썼을 리가 없다"는 댓글이 달렸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참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취업 후 첫 어버이날, 근사한 선물 해드리고 싶었는데..." - 신입 직원들이 기존직원들보다 경제적인 부담이 더 클 것 같다. 이제 막 경제적으로 자립한 시기인데 어려움은 없나? 이 : 수습이 끝나고 나면 월급이 많아지기 시작할 타이밍에 파업을 하러 왔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취업이 많이 늦어져 얼마 전까지 용돈을 받다가 이번에 취업을 하면서 부모님께 용돈을 챙겨 드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3달 만에 용돈을 다시 받게 됐다. 이번 어버이날에 근사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속상했다. 김 : 4월까지 일을 해서 급여가 나왔다. 이거면 좀 더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취직하고 한 번도 근사한 선물을 못해서 어버이날에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약소해졌다.(웃음) 홍 : 입사하고 들어 두었던 적금은 부모님께서 대신 내주고 계신다. 노조에서 일부 임금 보전을 해준다. 언론 노동자이기 때문에 (파업하는 데) 많은 혜택이 있고, 몇 가지 안전판 위에서 파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업장의 파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서 파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파업해야 할 것 같다. - 파업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홍 : 저는 <리셋 KBS 뉴스 9>를 선배들과 하는데 1주일에 한 번 방송하는 게 쉽지 않다. 파업 중이라 취재 차량이나 장비 같은 인프라 지원도 전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선배들은 굉장히 열심히 하신다. 그동안 파업 전에 못한 뉴스를 하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김 : 입사하면서 선배들에게 "연합뉴스는 통신사이기 때문에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늦게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만큼 성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업하면서 선배들의 성실함을 느꼈다. 이 : 파업 100일 때 전 조합원이 여의도 MBC 남문광장에 모여서 기념식을 하는데 최일구 선배가 성명서를 읽었다. 최 선배가 준엄하면서도 우렁차게 성명서를 읽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 파업이 몇 달을 넘기면서 이탈자가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나? 이 : 저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이제 파업을 대하는 진의가 드러나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분들은 처음부터 이 파업의 취지에 공감을 안 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홍 : 열심히 파업 하시던 분들이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화가 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한편으로 나는 (혼자라서) 생계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선배들과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각자의 사정은 이해되지만 안타깝다. 김 : 최근에 보직을 맡고 있는 선배 일부가 복귀를 했다. 많은 비중은 아니라서 파업 대오를 유지하는 데 큰 변화는 없다. 그 선배들이 복귀를 하면서 부장이 혼자 일하는 게 안쓰럽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것도 이해는 된다. 나도 파업 참여 전에 부장님과 함께 있을 때는 그랬으니까. 다만 마찬가지로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도 미안하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일부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파업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업의 절박함이 덜해 보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 웃고 있지만 실제로 쉬운 상황은 아니다. 우리가 파업을 하는 이유는 공정 보도라는 가치관이다. 그래서 똑같이 파업을 하더라도 그 파업이 보이는 양상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파업을 하고 있다는 그 진정성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생존을 위해서 파업하고 있는 분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파업 이기고 돌아가서 그런 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보도하겠다. 김 : 이번 파업을 계기로 언론인들이 자신도 노동자임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기자들이 일을 하면서 일 자체에 매몰되어 다른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많이 쏟지 못한 것 같고, 그런 부분에서 비판을 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 : 절박함과 관련해 언론노동자의 특수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싸운다. 언론노동자의 특수한 성격상 자율성과 독립성이 생존만큼 중요할 수 있다. 기사 쓰고 취재하는 일이 가치판단의 연속인데 거기에 대해서 억압이나 부당한 개입이 있을 때 느끼는 자괴감도 충분히 절박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서 파업하는 분들과 우리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은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연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 MBC는 계약직 채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시용' 계약직 사원도 뽑는다고 한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다른 회사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 : 지원 가능한 대상이 되는 분들이 좀 고민을 하셨으면 좋겠다. 회사 쪽에서는 쓰다가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채용을 한다. 이런 채용 자체가 부당한 것이고 이런 경우에는 지원 대상에 오른 사람들이 지원을 안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언론인 지망생들은 파업에 찬성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언론사의 문이 워낙 좁아 계약직 채용에 흔들린다고 말한다. 홍 : 기자라는 직업의 특수성상 자율성 없이는 뭔가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뽑힌 계약직 기자들은 애초에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는데 제대로 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김 : 언론인 지망생들이 이야기한 것에 공감을 한다. 나도 입사 전에 힘든 시절을 겪었다. 당연히 혹할 것 같다. 그런데 지원을 고민하더라도 처음에 내가 왜 언론인이 되고 싶었는지 고민해본다면 그런 마음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재철은 '홍길동', 박정찬은 '샤이보이', 김인규는 '지킬 앤 하이드' - MBC, KBS, 연합뉴스 모두 국민들로부터 지난 4년 동안 정권에 충성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입사 지원할 때 그런 부분 고려하지 않았나? 이 : 나는 오히려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이 MBC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조금 어렵지만 이걸(공정방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언론사는 MBC라고 생각한다. 정권을 향해 투쟁하고 있는 MBC 선배들의 모습이 MBC를 지원한 이유였다. 홍 : 입사를 준비할 때 스터디를 하면서 뉴스모니터를 열심히 했는데 스터디원들과 KBS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김인규 사장 아래에서의 KBS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다. 지금처럼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하는 게 진짜 KBS의 모습이다. 김 : 언론사도 회사이지만 공적인 영역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그런(정치적) 문제는 더 중요하다. 입사 전에도 그런 고민이 있었지만,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줄은 잘 몰랐다. - 채용 당시 지금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사장이 면접을 봤을 텐데 채용과정에서 괴리감은 없었나? 홍 : 우리(KBS)는 질문이 노골적이었다. 면접에서 '천안함'과 'PD수첩'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내 가치관을 묻기보다는 우리 편인지 다른 편인지 알아보겠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철저히 거짓말을 준비해서 갔다. 솔직히 일단은 입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지만 괴리감과 회의감이 컸다. 면접이 끝나자 언론사에서 기자를 뽑는다는 게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를 뽑는데 왜 이렇게 이념 성향이 중요한가', '(사실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하는 기자를 뽑는다는 취지와 완전히 배치되는데 간부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런 질문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김 :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채용과정에서 검열은 하는 듯한 질문은 없었다. 이 : 저는 면접 전날 준비를 했는데, 논쟁거리에 대해 최종면접에 나오실 분들이 좋아할 말로 읊어보니 중언부언 되고 엉키더라. 내 생각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냥 내 생각을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고 갔다. (MBC는) 최종면접이 원탁에서 대상자들이 둘러앉아 밥을 2, 3시간 동안 먹으면서 진행되었는데. 당시 김문수 지사 축소 보도 건(지난 연말 MBC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전화 관련 보도를 축소했다는 논란이 있다)으로 말이 많던 시기다. 보도국장이 김문수 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었다. 나는 보도를 축소한 정황이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 자기 회사 사장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 : 김재철 MBC 사장은 '홍길동'이라고 하겠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니까. 김 :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은 '샤이보이'다. 박 사장은 부끄러운 사장이다. 홍 : 김인규 KBS 사장은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다. 예전에 우리 김 사장이 '공영방송론'이라는 책을 냈다. 그 책에 온갖 공영방송의 좋은 이야기가 다 들어 있고, 평소에 자기는 한평생 공영방송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 사람이 5공 때 노골적으로 정권을 찬양하는 리포트를 했고, 지금은 특보사장을 하고 공영방송을 망치고 있다. 이중적인 모습이다. - 사장에게 한마디씩 해달라 이 : 김재철 사장 전공이 사학인데 누구보다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을 잘 아실 거다. 전공적 관점을 잘 발휘해서 용단을 내렸으면 좋겠다. 김 : 저는 지금도 박정찬 사장을 제 선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후배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이 수십 년간 몸담았던 연합뉴스를 위해서 바르고 빠른 결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홍 : 사장 대 평직원이 아니라. 같은 저널리스트로서 김인규 사장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사장이 쓴 공영방송론을 스스로 다시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자신이 말한 공영방송의 이상이 낙하산 사장이 오는 것인가? 신입으로 빨리 돌아가 일하고 싶다. - 앞으로 어떤 언론인이 되고 싶나? 이 : 저는 '포클레인' 같은 기자가 되겠다. (기득권자들이) 꽁꽁 숨겨둔 꼼수가 있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기자가 되고 싶다. 김 : 저는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다. 독자들과 취재원, 같이 일하는 동료,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다. 홍 : 이번 파업을 통해 배운 것은 자기 성찰하는 언론인이 되어야겠다는 거다. 기자는 권력의 유혹에 잘 빠질 수 있다. 기존 보도 관행이나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순응하기 쉬운 점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자기를 성찰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 ...모든 갈등 '넝쿨째' 터지는 절정으로 질주
시청률 30%를 넘나드며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 대가족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정감있게 그리며 '막장' 없는 가족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시트콤에 가까운 웃음을 주기도 하는 작가의 능력과 배우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연출력이 조화를 이룬 결과죠. 절정을 향해 질주하는 <넝굴당> 총 50부작으로 예정된 회차 중 이제 터닝 포인트를 지난 <넝굴당>. 방귀남(유준상)이 가족을 찾고 차윤희(김남주)가 '시월드'에 입성하면서 겪는 갈등이 지나간 후 이제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남은 갈등이 한둘씩 터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19일 방송에서는 이 같은 드라마의 전개가 잘 표현되었는데요, 실종 당시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귀남과 사건의 중심에 있는 작은어머니 장영실(나영희), 의도적으로 말숙(오연서)에게 접근한 것을 고백한 차세광(강민혁), 매니저일을 시작한 이후 이혼 사실이 밝혀질 것이 암시된 일숙(양정아), 이숙(조윤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기 시작한 재용(이희준), 그리고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차윤희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이는 잠시 시청률 정체에 놓였던 <넝굴당>이 앞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발할 만한 요소들을 잔뜩 남겨두었다는 예고편과도 같았던 전개였죠. 모든 갈등요소가 각각 단독으로 떨어뜨려 놓아도 충분한 매력을 가진 소재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넝굴당>은 매회 절정을 향한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선보일 듯합니다. 정통 가족드라마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넝굴당> <넝굴당>은 자극적인 소재로 넘쳐나는 요즘 드라마 추세에서 보석같은 존재입니다. 정통 가족드라마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약간의 변형을 주며 시청률 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입양이나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다소 격정적으로 흐를 수 있을 소재를 감정과잉을 최대한 배제하며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이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개가 늘어질 만 하면 깜짝 카메오의 등장으로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했던 <넝굴당>. 하지만 정작 전체적인 흐름의 큰 줄기는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며 이야기의 중심을 잘 잡아주며 시청자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신뢰감 가는 드라마 <넝굴당>. 앞으로도 정통 가족드라마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주기를 바랍니다.